TOUR/2009 고창 선운사...그리고 부여

사비성...낙화암과 의자왕

Intoxicated BK 2010. 4. 13. 05:00
추운날씨덕에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내가 여행다니면서 깊은 감흥을 받았던 '부여'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 감흥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氣] 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에서 금강을 끼고 성곽이 있는데
이를 부소산위에 있다하여 부소산성이라 한다.
학창시절 더 자주 들었던 말로는 사비성으로 배운 것으로 기억한다.

입장료 물론 있다.(난 이 입장료를 받는 것에 초지일관 반대하는 바이다. 그래서 꼭 언급한다)

주요 볼 거리 : 낙화암(백화정), 고란사, 군수품 창고등등








낙화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서기 660년(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여 명이 백마강() 바위 위에서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 바위를 사람들이 낙화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암석 위에 1929년 다시 그곳 군수 홍한표()가 백화정()을 지었고, 절벽 아래에는 ‘낙화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의자왕

의자()는 휘()로서, 그는 왕의 시호가 없다.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라 일컬었다. 642년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獼猴) 등 40여 성을 빼앗았고, 이어 윤충()으로 대야성(:경남 합천)을 함락시켜 성주인 품석()을 죽이는 등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듬해에도 당항성(:남양)을 빼앗아 신라가 당()나라로 가는 입조()의 길을 막는 등 국위의 만회에 힘썼다.

그러나 만년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성충() ·흥수() 등 충신의 간()을 듣지 않고 국정을 돌보지 않다가 660년 나 ·당() 연합군의 침공을 맞게 되었다. 계백()의 황산벌싸움을 마지막으로 백제의 방어선이 모두 무너져 수도 사비성(:충남 부여)이 나 ·당 연합군에 포위되자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웅진성(:충남 공주)에 피신하였으나 끝내 항복하였다. 그는 태자 등 1만 2000여 명과 함께 소정방()에게 끌려 당나라에 압송되었다가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산성앞 화장실에서 추위를 녹이며 한 컷!